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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 인터뷰 스케치

관리자 2018-02-03 조회수 1,206

백산 김정옥 사기장님 인물사진1.jpg

 

 
 
 
 

Q : 7대째 가업으로 도자기 제작을 이어가시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가업을 잇는 일이 드문데요. 선생님께서 처음 도자기의 매력을 느낀 지점과 도자기 만드는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17세 때부터 정식으로 선친으로부터 도자 수련을 시작하였습니다. 팔순이 다 되어가는 제가 평생을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일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저희 가문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 왕실의 도자기를 만들었던 최고의 사기장들 중에는 저의 조부이신 김비안 사기장이 있습니다. 조부께서는 당시 항아리 제작의 기예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아 관요(조선 왕실의 도자기 제작소)로 차출이 되셨습니다. 당시 6세이셨던 저의 선친(백산가문 6대 김교수 사기장) 또한 조부를 따라 상경하여 경기도 광주 분원에 머무시면서 성장기를 보내셨습니다. 조선 왕실 관요가 문을 닫자 조부(백산가문 5대 비안 김운희 사기장)께서는 일제강점기때 문경으로 귀향하시어 69세 때까지 작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친(김교수 사기장)께서는 분원에 홀로 남아계셨는데, 경기도 광주 일대에 생겨난 개인 가마에 요즘 말로 스카웃이 되셨습니다. 1~2년 그곳에서 물레 성형장인으로 작업을 하시다 고향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문경으로 귀향하셨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하신 선친과 일제 강점기 해방, 6.25 등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으면서 저는 선친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부에 대한 말씀과 선친께서 경기도 광주에서 경험하셨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1년 365일 매일을 함께 작업장에서 선친과 보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선친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들의 거의 90%이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조부(5대 비안 김운희 사기장)께서 조선왕실 관요 사기장으로 발탁되어 작업하신 내용과 관련된 문헌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헌기록 발견: 백산도자문화연구소 김남희)지규식이라는 조선 말기 공인이 20여 년 동안 쓴 분원일지인  『하재일기』 에 '문경에서 온 김비안 사기장'이 망동요(망댕이 가마)를 축조하였는데, 축조과정에서 쉽게 무너지고 만 다른 가마들과는 달리 내구성이 뛰어나 김비안의 망동요에서는 조선백자를 성공적으로 소성할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김경식, 「경북 문경지역 도자제작의 역사와 사기장인의 역할」 , 『한국도자학연구』 한국도자학회, 2017)


조부와 선친께서는 광주 관요에서 작업을 하셨던 경험을 바탕으로 문경에서도 관요 양식의 백자를 제작하시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제가 만들고 있는 조선시대 백자는 관요의 도자기를 만드셨던 선조로부터 계승되어 오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왕실 도자의 맥이 이 곳 문경에서 저희 가문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 여전히 전통적인 장작가마와 발로 돌리는 물레를 사용하셔서 도자기를 구우시는데요. 전통방식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나라에서 저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유는 제가 저희 가문에서 제작해오고 있던 조시시대 백자의 전통 제작기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문의 물레를 사용하고 가문에서 사용하던 가마를 지켜오면서 말입니다. 저에게 이러한 가문의 전통을 잘 유지하고 또 후대에 잘 계승해주어야 하는 의무를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은 오랜 시간을 거쳐 여러 사람의 경험이 응축된 결과물이며 전통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수 백년에 걸쳐서 했던 경험들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저희 선대 사기장들의 경험 중 최상의 기술이 모여 제가 그 기술을 전수 받았고 저 또한 거기에 저 나름의 기술을 더해 저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의무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그리고 발전하는 전통을 지속해 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Q : 과거에는 도자기가 생활용품이었다면 이제는 예술작품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명장의 작품일수록 더욱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래서 비슷해 보이는 도자기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다를 것 같습니다. 도자기를 빚고, 구워내실 때 무엇에 가장 중점을 두고 계시나요?

 



저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그릇들은 가마 속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친구가 된다. 시름에 젖은 자에게는 술사발로, 아픈 자에게는 약사발로, 배고픈 자에게는 밥사발로, 마음을 닦는 자에게는 찻사발로 그들의 생을 채워주고 보듬어 준다.'

 
그래서 저는 도자기를 만들 때 제가 만든 도자기를 사용하거나 보게 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달항아리를 만들 때는 이 달항아리를 보면서 달항아리처럼 넉넉하고 포근한 마음을 가지게 되길 바라고, 용 그림을 그릴 때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포부, 물고기를 그릴 때는 흐르는 물살을 가로 지르듯 역경을 헤쳐 가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포도넝쿨 무늬나 모란 꽃 무늬를 그릴 때는 집안에 부귀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제가 혼신을 다해 만든 도자기에 저의 기원을 담아 내보내면 결국 그 도자기를 보고 즐기고 또 사용하는 사람들도 좋은 기운을 얻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그릇이 완성되기까지는 수 백번의 손길이 거치며 만드는 사람의 땀과 숨결이 녹아 있습니다. 제가 만든 도자기에는 그것을 사용하거나 보고 즐기는 분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저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Q : 모든 도자기가 선생님들께 특별한 자식들이겠지만, 그 동안 빚어 오신 도자기 중 가장 아픔 손가락이 있거나 혹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만드신 도자기가 있을까요?

 


 " 여러 작품이 있겠습니다만 달항아리를 꼽고 싶습니다. 저희 조부(백산가문 5대 김비안 사기장)께서는 달항아리를 잘 만드셔서 관요로 발탁이 되셨습니다. 저의 선친도 달항아리를 만드셨고 저의 아들, 손자까지 달항아리를 만드니 저희 가문은 5대가 달항아리를 만든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현재 달항아리는 전세계적으로 불과 몇 십 점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희 선조께서 만드신 달항아리도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평생을 달항아리를 만들어 보면서 느끼는 점은 달항아리는 두 쪽을 따로 만들어 붙이다 보니 매번 만들 때 마다 그 모양새가 다릅니다. 1300도가 되는 불 속에서 근 20시간 들어가서는 또 다른 모습이 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의 달항아리도 이쪽에서 보고 저쪽에서 보면 생김새가 각각입니다. 그런 오묘한 점이 저는 좋습니다. 저를 힘들게도 하고 그만큼 가마에서 꺼낼 때 기대를 가지게 되는 작품이 바로 달항아리입니다. 그리고 저의 호가 백산, 즉 흰 ‘백’에 뫼 ‘산’입니다. 그러나 보니 저는 늘 흰색을 즐겨 입고 백자를 즐겨 만듭니다.


그래서 아무런 문양이 없는 큰 흰색의 달항아리는 어찌 보면 평생을 도자기를 만들어 온 저의 인생과도 같지 않나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늘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를 예단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최상의 기술로 크고 둥그런 원형의 달항아리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불 속에 들어가서 나오면 한 쪽이 기울어지거나 혹은 금이 가거나 불 속에서 재가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저의 60년 도자 인생도 그러했습니다. 쉬운 것은 단 한가지도 없었습니다."
 

 

Q : 물건을 담는다는 큰 의미에서 냉장고도자기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자기의 어떤 점이 냉장고에 적용되었을 때, 기능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나요?

 
 
"토기에 유약을 입히면서 만들기 시작했던 도자기는 동양에서 이천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우리의 삶에 매우 가까이서 사용되어 온 것이 바로 도자기입니다. 현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도자기는 관상용뿐 만 아니라 생활 식기로 매우 가깝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서 채취한 좋은 흙과 유약을 사용하여 만들고, 잘 말린 적송으로 구워낸 우리의 도자기에는 몸에 해로운 성분이 나올 리가 없어 늘 곁에 두고 사용하기에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어느 학자가 실험했던 우유실험 논문, 10년 동안 물을 담아둔 저의 경험 등으로 볼 때 도자기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데 장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냉장고의 역할이 음식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것이므로 도자기의 그러한 장점이 잘 적용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위생적으로도 다른 재질보다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 선생님께서는 도예부분 최초 명장, 국내유일의 사기장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이신데요, 이를 이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신 것 같습니다. 아들과 손자도 대를 이어 9대째 가업을 이어가게 된다고 들었는데요, 후학 양성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고 계신 점이 있으신가요?

 

    


" 저희 집안은 7대를 넘어 손자 9대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가문입니다. 태토를 선별하는 일, 발물레와 전통 장작가마, 유약을 입히는 일까지 모두 전통방식을 그대로 따라 선조들이 만드셨던 조선시대 백자의 작업 방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도예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과 손자 역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도자의 맥을 잘 이어나가 우리 가문의 물레가 멈추지 않고 영원히 돌아가길 바랍니다.

 

도자기에는 자연의 순리가 담겨있고, 우리 선조들이 오랫동안 공들여 개발한 삶의 지혜가 깃들여 있습니다. 도자기는 항상 우리의 삶과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우리의 생명을 건강하게 지켜줄 가장 인간적인 공예품이며 생활 용기입니다. 좀 더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 도자기를 애용할 수 있도록 저의 후손들이 늘 멈추지 말고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Q : 2014년도 JTBC에서 진행된 가상결혼예능 프로그램에도 출현하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관대하시고 그만큼 새로운 분야와 협업을 통해 느끼시는 점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번 삼성전자와의 협업 과정을 통해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냉장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 협업을 통해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도자기를 활용하여 냉장고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저 또한 전통의 기술을 계승하고 보존해야하는 역할과 의무가 있지만 그 과정에는 역경과 인내가 필요하고 특히 불과의 싸움은 항상 새로운 도전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이 새로운 도전에도 여러 노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자기는 전통적으로 우리들의 식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도자기를 활용한 냉장고는 전통적 생활의 지혜와 현대의 기술력이 응축된 결합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통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서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도자기에 대해서 잘 알고 많이 애용할 수 있을까라는 점입니다. 이번 협업을 통해 도자기를 활용한 삼성의 냉장고처럼 도자기가 현대인들의 생활에도 좀 더 편리하고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저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작업을 지속하실 생각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저는 저의 조부와 선친께서 그러하셨듯이
제 힘이 다하는 날까지 발물레를 돌리고 망댕이 가마에 불을 지필 것입니다.
아직도 제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작품들이 있고, 여전히 저의 작품을 기다리는 많은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자료정리 : 백산도자문화연구소 

 

삼성전자 장인의 냉장고 ‘셰프컬렉션 포슬린’ 과 백산 김정옥 사기장 협업 광고영상 '장인과의 인터뷰' 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onQUJWbdK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