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代
1860 년 출생
金 雲 熙 [비안 김 운 희]
비안備安 김운희金雲熙(1860~1929)
당대 김비안金備安으로도 불림(택호)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하재일기荷齋日記』, 하재荷齋 지규식池圭植
(1851년 출생) 著, 서울대학교 규장각 古 4655-44-1~9
5대 김운희는 선친 김낙집에 이어 문경 백산가문의 가마를 운영했다. 그는 달항아리 제작의 탁월한 기술을 인정받아 1880년대에 왕실 소속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 사기장으로 발탁된 바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분원은 왕실과 중앙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백자를 생산하고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관요였다. 전국 각지에서 도자기 제작에 뛰어난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모여 조선 최고의 백자를 생산하던 분원에 소속되었던 김운희는 문경지역에서 전수되어온 전통 가마의 우수성을 입증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운희는 1898년에 분원을 계승한 '분원번자회사分院燔磁會社'에 물레성형장으로 고용되어 작업하였고 1903년에는 문경지역의 가마 제작 기술로 만들어진 망동요望同窯를 분원에 축조하였다.
김운희는 1910년 문경으로 귀향하여 1929년까지 백산 가문의 가마에서 작업을 지속하였다.
김운희는 조선시대 최고의 백자 생산지였던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작업했던 10여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경으로 귀향한 후에 모란문牡丹紋, 봉황문鳳凰紋, 불수감문佛手柑紋 등의 고급 청화백자 항아리를 제작하였다.
그가 만든 분원 양식의 수준 높은 백자들은 조선시대 말기 관요의 백자 제작 기술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례가 된다.
“ 백산 김정옥의 조부이신 영남요 5대 비안 김운희 사기장의 광주 분원에서의 행적과 조선 말기 분원공소의 공인 지규식이 쓴『하재일기』의 관련 기록은 백산도자문화연구소의 김남희가 200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중 발견하였으며 이후 학위논문과 연구논문에서 상세히 정리하였습니다.
1995년 정명호 교수의 논문에 김정옥 사기장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백산 도자가문의 계보와 비안 김운희 사기장의 광주 분원에서의 망댕이 가마[망동요(望同窯)] 축조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 정명호, 「사기장(沙器匠) 명칭(名稱)과 제조기술에 관한 연구」,『실학사상연구』5(모악실학회, 1995)
1987년『샘이 깊은 물』에 게재된 ‘조선 백자 가마 하나가 남아 있다.- 조선백자 가마의 주인 김정옥씨를 만나다.(글: 한창기)’의 기사내용 취재 인터뷰에서 조부 김비안의 사기장으로서의 업적과 광주 분원으로 차출되어 망댕이 가마를 축조하게 된 배경 그리고 축조과정을 비롯하여 분원 사기장 장성화(조선 말기 분원 사기장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장인)에 대한 일화를 김정옥 사기장이 구체적으로 증언한 바 있습니다.
- 한창기,『샘이 깊은 물』(뿌리 깊은 나무, 1987년 11월호)”
조선말기 사옹원司饔院 분원공소分院貢所의 공인貢人이었던 지규식池圭植이 20여 년에 걸쳐 쓴 『하재일기荷齋日記(1891~1911)』 1903년 편에는 김운희金雲熙의 활동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김운희는 김비안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이 택호 그의 처가가 위치한 경북 의성군 비안備安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 7권 1903년 4월 10일에 '破窯處 使聞慶金備安 築 望同窯 二間'이라는 기록으로 ‘가마가 무너진 곳에 문경에서 온 김비안을 시켜 望同窯 두 칸을 축조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가마 축조시 돔형지붕을 지탱하기 위한 골조
5대 비안備安 김운희金雲熙(1860~1929) 사기장이 경기도 광주 분원分院에 망동요望同窯를 축조하는 모형도
5대 김비안이 경기도 광주 분원에 망동요望同窯를 축조하게 된 배경은 『하재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청화백자초문병靑畵白磁草文甁, 18-19세기, 백산 김정옥 소장
청화백자모란문호靑畵白磁牡丹文壺, 19세기, 백산 김정옥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