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영남요 5대

아래에 수록된 도판 및 글의 저작권은 백산도자문화연구소에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서면 허가 없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어떠한 형태로든 무단으로 게재 및 복사할 수 없습니다.

* 출처 : 김경식, 「경상북도 문경지역 도자제작의 역사와 사기장인의 역할」, 『한국도자학연구』, 한국도자학회, 2017

5代

1860 년 출생

金 雲 熙 [비안 김 운 희]

비안備安 김운희金雲熙(1860~1929)
당대 김비안金備安으로도 불림(택호)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하재일기荷齋日記』, 하재荷齋 지규식池圭植
(1851년 출생) 著, 서울대학교 규장각 古 4655-44-1~9

5대 김운희는 선친 김낙집에 이어 문경 백산가문의 가마를 운영했다. 그는 달항아리 제작의 탁월한 기술을 인정받아 1880년대에 왕실 소속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 사기장으로 발탁된 바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분원은 왕실과 중앙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백자를 생산하고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관요였다. 전국 각지에서 도자기 제작에 뛰어난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모여 조선 최고의 백자를 생산하던 분원에 소속되었던 김운희는 문경지역에서 전수되어온 전통 가마의 우수성을 입증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운희는 1898년에 분원을 계승한 '분원번자회사分院燔磁會社'에 물레성형장으로 고용되어 작업하였고 1903년에는 문경지역의 가마 제작 기술로 만들어진 망동요望同窯를 분원에 축조하였다.

김운희는 1910년 문경으로 귀향하여 1929년까지 백산 가문의 가마에서 작업을 지속하였다.

김운희는 조선시대 최고의 백자 생산지였던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작업했던 10여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경으로 귀향한 후에 모란문牡丹紋, 봉황문鳳凰紋, 불수감문佛手柑紋 등의 고급 청화백자 항아리를 제작하였다.

그가 만든 분원 양식의 수준 높은 백자들은 조선시대 말기 관요의 백자 제작 기술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례가 된다.


내용 및 사진 출처

  • · 김남희, 「조선말기 망동요望同窯의 기원과 전개」, 『한국학연구』 제49집, 한국학연구소. 2014.
  • · _____, 「조선말기 망동요望同窯의 재현再現과 실연實演」, 『도예연구』 Vol.23,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2014.

“ 백산 김정옥의 조부이신 영남요 5대 비안 김운희 사기장의 광주 분원에서의 행적과 조선 말기 분원공소의 공인 지규식이 쓴『하재일기』의 관련 기록은 백산도자문화연구소의 김남희가 2009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중 발견하였으며 이후 학위논문과 연구논문에서 상세히 정리하였습니다.

1995년 정명호 교수의 논문에 김정옥 사기장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백산 도자가문의 계보와 비안 김운희 사기장의 광주 분원에서의 망댕이 가마[망동요(望同窯)] 축조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 정명호, 「사기장(沙器匠) 명칭(名稱)과 제조기술에 관한 연구」,『실학사상연구』5(모악실학회, 1995)

논문 내용 자세히 보기

1987년『샘이 깊은 물』에 게재된 ‘조선 백자 가마 하나가 남아 있다.- 조선백자 가마의 주인 김정옥씨를 만나다.(글: 한창기)’의 기사내용 취재 인터뷰에서 조부 김비안의 사기장으로서의 업적과 광주 분원으로 차출되어 망댕이 가마를 축조하게 된 배경 그리고 축조과정을 비롯하여 분원 사기장 장성화(조선 말기 분원 사기장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장인)에 대한 일화를 김정옥 사기장이 구체적으로 증언한 바 있습니다.

- 한창기,『샘이 깊은 물』(뿌리 깊은 나무, 1987년 11월호)”

기사 내용 자세히 보기

조선말기 사옹원司饔院 분원공소分院貢所의 공인貢人이었던 지규식池圭植이 20여 년에 걸쳐 쓴 『하재일기荷齋日記(1891~1911)』 1903년 편에는 김운희金雲熙의 활동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김운희는 김비안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이 택호 그의 처가가 위치한 경북 의성군 비안備安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 7권 1903년 4월 10일에 '破窯處 使聞慶金備安 築 望同窯 二間'이라는 기록으로 ‘가마가 무너진 곳에 문경에서 온 김비안을 시켜 望同窯 두 칸을 축조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가마 축조시 돔형지붕을 지탱하기 위한 골조

5대 비안備安 김운희金雲熙(1860~1929) 사기장이 경기도 광주 분원分院에 망동요望同窯를 축조하는 모형도

5대 김비안이 경기도 광주 분원에 망동요望同窯를 축조하게 된 배경은 『하재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荷齋日記』 1903년 3월 15일
銀谷新窯建築次 上釜毁撤材木 搬運於新基 化浪坊沈氏山栗木
三十株 結[決]價四百五十兩買得
銀谷에 새 가마를 축조하려고 위 가마 헐어낸 재목을 새 터로 옮겼다.
화랑방 심씨 산 밤나무 30주를 450냥에 값을 결정하였다.
『荷齋日記』 1903년 3월 18일
築釜
가마를 축조했다.
『荷齋日記』 1903년 4월 3일
午後 新築窯自壞 去骨役人 方出窯 辛免壓死之境 驚歎何極
오후에 신축 가마가 저절로 무너졌다. 골조를 제거하던 役夫가 막
가마에서 나와서 다행히 압사를 면하였다. 너무나 놀라 어찌 할 바
를 몰랐다.
『荷齋日記』 1903년 4월 10일
破窯處 使聞慶金備安 築望同窯二間
가마가 무너진 곳에 문경에서 온 김비안을 시켜 망동요 두칸을
축조하게 하였다.
『荷齋日記』 1903년 4월 11일
築窯三間未了
가마 3칸을 축조하여 일을 아직 끝내지 못했다.
『荷齋日記』 1903년 4월 13일
築窯畢
가마 만드는 일을 끝냈다.

청화백자초문병靑畵白磁草文甁, 18-19세기, 백산 김정옥 소장

청화백자모란문호靑畵白磁牡丹文壺, 19세기, 백산 김정옥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