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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삶과 도업

* 사진 및 자료정리 : 백산도자문화연구소

1970년대

흙에서 세상을 찾다

“지금 나는 장인이라 불린다. 그러나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깊은 숲 속에 묻혀있는 이름 없는 흙처럼 살았다.”


도자를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흙이다.
흙은 도자의 근본이다.
나는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으며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흙을 버리지 않았다.
힘들고 배고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흙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흙이 불을 통과해야 아름다움을 얻듯이, 나의 생도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며 빛을 얻고 생명을 얻은 것이다.
쉬운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틈을 내 농사를 지으면서도 언제나 내 가슴 속에는 물레가 돌고 있었다.



1975

1976

1979

나의 아버지 김교수 사기장 글: 백산 김정옥

조선시대 말기 당시 5세의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5대 비안備安 김운희金雲熙, 1860~1929)를 따라 왕실의 도자기 제작소가 있는 경기도 광주 분원分院으로 상경하셨던 아버지는 분원에서 시행하였던 유소년 교육을 받으신 이후, 일제강점기 광주와 문경을 오가며 도자 장인의 삶을 이어가셨습니다.

조선말기 분원의 마지막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역경의 세월을 온 몸으로 겪어내신 아버지의 삶의 궤적은 한국 근대 도자의 역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조선왕실의 도자기를 만들었던 분원의 제작기술뿐만 아니라 가문의 문양인 포도넝쿨문을 계승하여 저에게 전수해 주셨으며, 1960년대 중반 정호다완 재현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장인이십니다.

“나의 아버지 김교수 사기장은 조선의 마지막 사기장이셨으며, 9대를 이어온 가문의 도자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제 삶의 근원이십니다.”

6대 김교수 사기장(金敎壽, 1894~1973), 1972